퍼포먼스 – 해프닝, 이벤트 10< 1회용 퍼포먼스, 전시 조각작품 깨뜨린 아름다운 이벤트>
전시회의 유명작가의 훼손 사건은 미국의 한 화랑에서도 있었다. 전시 작품에 덧칠해서 훼손한 사건은 일정 부분 현대미술의 아이러니를 함축하고 있다. 전시나 미술품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는 철부지 20대의 만행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작품에 덧칠한 부분이 작품의 임팩트를 살렸다는 우연한 의견도 있다는 것이 화제이다. 이 작품의 크기는 폭이 7미터 정도로 주최 측이 밝힌 작품가는 5억 원이다. 작가 존원은 미국 할렘가를 누비고 다닌 자유분방한 길거리 화가로 예기치 않은 기막힌 사건에 대한 그의 쿨한 태도가 화제가 되었다. 훼손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지도 않고 훼손된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재 전시한다는 플러스되는 홍보 효과를 보았다. 이걸 훼손으로 봐야 할 것인가? 전시 주최 측은 작가의 아이덴티티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림 앞에 페인트와 붓까지 친절하게 늘어논 것이 관람객에게 훼손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고 결론내렸다. 결국 낙서에 낙서를 한 꼴이 되었다. 담벼락 낙서의 추억을 더듬어보면 낙서 자체가 낙서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시회의 덧칠 사건은 관람객이 예술창작에 동참하라는 사인을 준 작가의 의도아닌 의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참여예술 행위었다.
위 화랑사건들을 접하면서 필자는 예술가의 마음이 예술작품보다 감동적임을 지나칠 수 없었다. 한국의 경우는 작품 <씨앗>의 의미를 강조하는 작가의 의지가 훈훈한 이야기를 만들었고 동시에 깨진 작품을 다시 복원시켜 전시를 계속하는 행위는 1회성 퍼포먼스 행위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역시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일어난 관객의 참여행위를 결과적으로 수용하여 전시를 계속함으로써 역시 1회성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해프닝, 이벤트로 우리에게 알려진 우연의 행위들은 넓은 의미에서 퍼포먼스로 정의된다. 퍼포먼스의 본질은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행위를 총칭하는 것이다. 우연의 행위예술은 조직적인 일반적 예술행위에 반하는 비조직적인 예술행위로서 우연을 강조하는 새로운 예술로서 퍼포먼스를 추구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퍼포먼스는 지속성이 가능한 우연의 예술이다. 소개한 화랑의 돌발적인 사건은 반복적 지속성은 불가능하지만 사건 후에 지속적인 전시의 의미는 1회용 퍼포먼스의 지속성을 의미할 수 있어 ‘퍼포먼스’로 규정할 수 있다. 막가파 폭력이 심심치않게 일어나는 사회적 위기에서 막가파 훼손이 일어날 수 있는 화랑의 위기로 볼 때, 비조직적인 퍼포먼스 행위예술의 위기도 예고된다. 필자의 지나친 우려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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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논설위원
ks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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