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부끄럽기 위해서!

칼럼=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 기사입력 2014/05/02 [05:32]

덜 부끄럽기 위해서!

칼럼=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 입력 : 2014/05/0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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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써 이번 참사를 보는 마음은 너무나 가슴이 쓰리고 더 많이 아프다. 연년생인 딸아이들이 고등학생일적에 차편이 좋지 않아 등하교를 시켰었다. 다행히 같은 학교를 다녀줘서 한 번에 둘을 통학 시킬 수 있었는데, 12시 때로는 새벽 1시가 다 돼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교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초췌한 모습의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불쌍하던지. 차에 올라타며 지친 몸이 쓰러질 때면 부모로서 자식한테 정말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그저 ‘고생 했어 딸! 힘들어 어쩌니?’ 그것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다 부모 못 만나 전쟁 같은 입시 지옥에서 살게 하는 것 같아서...그래서 누구의 아이라도 같은 방향이면 태워주기라고 하려고 애를 썼었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어찌하다보니 등하교 봉고가 다니지 않는 곳으로 배정을 받아 누나들처럼 등하교를 시켰다. 우르르 쾅쾅! 종래 벨이 울리기가 무섭게 버스 정류장을 향해 내 달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짠하기는 매 한가지다. ‘고생했다. 사랑한다. 아들!’ 말만 되풀이 하는 못난 엄마요. 그런 녀석들 모두가 예쁜 내 자식들이다. “우리 엄마는 내 친구들만 보면 막 애교부리고 말이 많아지셔!”라며 떠드는 엄마가 민망한지, 친구들에게 변명을 하느라 애를 쓰는 아들이다. 그저 다 그렇게 예쁘고 그렇게 사랑스러워 나는 아들 친구들에게도 자주 ‘사랑한다. 아들!’하고 인사한다. 얼마나 예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뭐든지 해 먹여 보내고 싶은 모두가 내 자식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번 참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아무리 사랑한다고 외쳐도 부족한 그 밝고 예쁜 녀석들이 그 엄청난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얼마나 무섭고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무너진다. 아이들은 소수의 인원이었다면 오히려 두려움에 뛰쳐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매일 같이 보며 웃고 떠들며 공부하던 같은 반 친구들이었기에 그 두려움 속에서도 의지가 되어 서로를 위로하며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 앞에 닥치는 죽음을 예견하지 못한 채 설마! 말 잘 들으면 괜찮다고 하니,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살 거다. 구해 줄 거다. 그렇게 믿고 있었고 그렇게 기다렸다.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더는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할 말을 잃었다. 더는 아이들 앞에서 나 자신이 부끄러워 농담도 못하고 더는 잘난 말로 아이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이제 더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쳐다볼 수가 없다. 그저 ‘사랑한다. 미안하다.’라는 말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이 원망스럽다. ‘기계적 교육은 인간을 망친다.’ 지금의 우리 교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그 선택에 용기 있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기가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 하고 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위해 자신의 삶에 열정을 쏟아야 하는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다람쥐 채 바퀴 돌 듯 눈만 뜨면 아이들은 학교로 학원으로 영혼 없는 시체놀이를 한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가라는 대로...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부모들이 얘기한다. 꿈은 나중에 꾸라고 말한다. 착한 아이,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가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지금의 격려와 칭찬으로도 충분하니까. 인간의 본성은 살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욕구를 주저앉힌 것은 잘못된 교육에 있다. 어른들은 말 잘 듣는 자식을 좋아한다. 그럼 그런 어른은 언제나 자신의 말이 옳은가? 자신이 한 말에 책임 질 수 있는가? 자신은 자식들에게 그리 큰 소리 치며 살 만큼 잘 살고 있는가? 생각해보라!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난 늘 ‘사랑한다.’고 얼버무린다. 미안하니까. 잘 해 주지 못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되기를 바라니까.

이번 참사는 우리 어른들이 다시 한 번 자신의 살아온 삶을 돌아볼 계기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어떤 모습을 보여야 어른다운 모습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남 탓을 하자면 끝이 없는 일이다. 세상일이 그렇게 자로 잰 듯, 무 자르 듯, 그렇게 구분 지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관계를 우리는 이미 형성해서 살고 있다. 지금에 와서 그런 것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놓고 줄 세워 반듯하게 정리하기란 결코 간단치 않는 일이다. 다만 지금이라도 우리가 있는 현재 위치에서 이제 더 나빠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한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지금 보다는 덜 부끄럽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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