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사로운 지난 주말이었다. 가족들과 점심식사가 끝난 후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등 옆에 서 있던 우리는 배부른 배를 통통 튕기며 좋은 날씨를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조카의 시선이 나무 아래 낙엽으로 향하더니 갑자기 조그만 손으로 낙엽을 줍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놀란 나는 깨끗하고 예쁜 잎으로 주우라고 말했지만 조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침없이 바닥에 손을 뻗어 낙엽들을 잡느라 바빴다. 모양이 더 아름답거나 진흙이 묻지 않은 깔끔한 것을 고르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잡히는 대로 움켜잡을 뿐이었다. 작디작은 손가락으로 힘껏 나뭇잎을 쥔 손에는 갈색, 붉은색, 흙색의 잎들이 흙먼지와 함께 고작 서너 개 있었다.
어느새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었다. 조카는 손에 꽉 쥔 낙엽을 미련 없이 톡톡 털어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건너편에는 나무에서 떨어져 바람 사이로 흩날리던 잎들이 한쪽으로 쌓여 있었다. 이번에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끌며 낙엽으로 다가가는 조카였다. 이번에는 손이 아닌 발을 재빨리 움직였다. 그리고는 두툼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딛는 모습에 낙엽 밟는 게 좋으냐고 물었다. 조카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좋다고 대답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재밌는지, 발끝에 전해지는 푹신한 느낌이 좋았는지는 모른다. 그저 신난다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웃었다. 겨우 33개월 된 조카의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웃음소리는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나의 순수함을 깨웠다. 바뀌는 계절마다 즐거워하던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요즘과 같이 깊어가는 가을, 땅에 떨어진 단풍잎을 하나 둘 골라 책 사이에 덮어두었다. 평평하고 납작하게 잘 마르고 있는지 가끔 한 번씩 열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바싹 마르면 엄마와 함께 단풍잎을 코팅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흘러가는 계절을 간직했다. 알록달록 물든 나뭇잎에 설레고 마른 낙엽을 밟으며 즐거워하던 시절이 내게도 분명 있었다. 조카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사소한 것 하나에도 손과 발을 내밀고 마음을 열었던 때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계절의 변화에 재잘거리며 웃던 어린이는 어느새 무표정한 어른이 되었다. 어릴 적 맑고 투명한 마음은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게 사라지고 없었다. 분실한 마음을 찾지 못한 채 무심한 어른으로 자랐다. 하지만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이 따뜻한 웃음에 녹기 시작한다. 이제야 꽁꽁 언 마음이 녹고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았다. 자꾸만 맴도는 조카의 웃음소리는 우리 주변에서 소중하다고 믿는 것들을 놓치지 말라고 다짐하게 만든다. <저작권자 ⓒ 충청의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지우 문화예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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