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오늘

생각하며 늙어간다는 것 5

〈글로 남긴다는 것, 기록〉

김수남, 청주대 명예교수 | 기사입력 2026/04/19 [08:45]

생각하며 늙어간다는 것 5

〈글로 남긴다는 것, 기록〉
김수남, 청주대 명예교수 | 입력 : 2026/04/19 [08:45]

  © 충청의오늘


나이가 들수록 

말은 줄어들고 

기록은 늘어난다. 

젊은 시절에는 

말로 싸웠고,

말로 설득했고,

말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말은 바람을 타고 흩어지지만 

글은 시간을 견딘다는 것을

 

나는 평생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생각은 그 순간 지나가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생각을 붙잡아 두는 유일한 방법이 기록이었다.

기록은 기억을 넘어선다. 

기억은 아름답게 왜곡된다.

때로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때로는 상처를 감추기 위해

사실을 조금씩 다르게 묘사한다. 그러나 기록은 그 순간의 온도와 그날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남긴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위해서만 글을 쓰지 않는다.

혹시 누군가

어느 날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습니까?”

묻는다면,

내가 대신 말하지 못해도 

내 글이 대답하게 하려는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정리하는 일이다.

 

젊음이 확장이라면,

노년은 정리다.

관계를 정리하고

욕망을 정리하고

미련을 정리한다.

그러나 생각까지 정리해버리면 

삶은 너무 가벼워진다. 

그래서 나는 

생각만은 남기기로 했다.

글로.

 

글은

나의 또 다른 호흡이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한 속내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기록은 

외로움에 대한 저항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록은 외로움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기도 하다. 

만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대화는 짧아지고 

이해는 더디다.

그러나 종이는 끝까지 들어준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읽어준다면

그 순간

나는 다시

세상과 연결된다.

 

그러나 

세상을 다 바꿀 수는 없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늘 환영받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생각하며 살았다는 사실만은 남기고 싶다.

그것이 

한 인간이 시대를 건너온 방식이었음을 기록하고 싶다. 

 

늙어간다는 것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정제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글은 그 정제의 결정체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문장을 고친다.

혹시라도

내 생각이 내가 떠난 뒤에도 

누군가의 마음에서 

다시 한 번 살아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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