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그런 유혹을 느낀 적이 있다. 이제는 좀 내려놓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이제는 남들처럼 무난하게, 조용히, 조심스럽게 살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끝내 그렇게 살지 못했다. 나는 평생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의문을 품지 않으면 답답했으며,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늘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늙어서도 여전히 생각한다. 생각은 나를 괴롭혔지만, 나를 지켜주었다 생각하는 삶은 결코 편하지 않다. 한 가지 사건을 보아도 쉽게 판단하지 못한다. 한 사람의 말을 들어도 그대로 믿지 않는다. 항상 “왜 그런가”, “그 배경은 무엇인가”, “다른 해석은 없는가”를 되묻게 된다. 이 습관은 나를 자주 피곤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렵게 했고, 때로는 고집 센 사람으로 보이게 했으며, 때로는 외로운 길로 나를 이끌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생각들이 나를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게 했고,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게 했으며, 거짓에 타협하지 않게 만들었다. 생각은 나를 괴롭혔지만, 동시에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였다.
지적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특별히 영리한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난히 궁금한 것이 많았다. 왜 역사는 이렇게 흘러왔는지, 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왜 예술은 시대마다 다른 얼굴을 갖는지. 그 궁금증이 나를 학문으로 이끌었고, 글로 이끌었으며, 평생 사유하는 길로 데려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적인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길 위에 서 있었던 사람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사람, 질문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사람. 그것이 바로 나였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은 더 깊어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생각이 굳는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자기 경험만을 절대화하며, 과거에 머무는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늙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조심스럽게 판단하고, 더 겸손하게 배우며,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믿는다. 젊음은 실수할 수 있는 용기이고, 노년은 책임지는 지혜이다. 그래서 나는 늙어서도 계속 공부하고, 계속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늙는 방식이다.
생각은 나를 외롭게 했지만, 고독하게 하지는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종종 외롭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상대가 줄어들고, 문제가 복잡해질수록 함께 고민할 사람이 적어진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외로움은 결핍이지만, 고독은 성숙이다. 나는 고독 속에서 나 자신과 대화했고, 삶과 마주했으며, 양심과 타협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혼자인 시간도 나에게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끝까지 생각하며 살고 싶다 이제 인생의 끝사락에 서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끝까지 생각하며 살 것이다. 편한 판단 대신 깊은 성찰을 택하고, 빠른 결론 대신 신중한 사유를 선택하며, 침묵 대신 책임 있는 말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걸어온 길이고, 앞으로도 걸어갈 길이다. 생각하며 늙어간다는 것은 늙어가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지적 인생이란 지식을 많이 쌓는 삶이 아니라, 끝까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삶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탄탄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나의 인생이다. <저작권자 ⓒ 충청의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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