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숙 칼럼] 2015년에 희망을 걸며...

2014년을 거울삼아 전화위복을 기필하자.

하은숙 (사)세종시언론인협의회 사무처장 | 입력 : 2015/02/21 [11:58]
▲     ©한국in뉴스

며칠 전 설을 보냈으니 음력으로 따져도 새해는 밝은 것이다. 을미년이란 말을 쓰기 위해서는 입춘을 지나야한다. 입춘은 양력으로 2월4일이니 을미년이 시작된 것은 근 20일 가까이 된다.
새해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난 해부터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지난 갑오년은 정말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건 사고가 많았다. 한마디로 정신없이 지나간 해였다.

일일이 다 이야기 할 수도 없을 만큼 많았던 사건과 사고들...
그중에서 특히 세월호 참사는 다시 회상하기조차 싫은 비극이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양산해 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엄청난 참사였음에도 책임질 지도층이 부재였다는 특성도 있다. 이로 인한 국민의 피해는 일일이 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지만, 특히 겨우 소생하려던 서민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점도 가슴 아프다.
 눈앞에서 너무도 참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도 속수무책이었다. 바다 속으로 침몰해가는 배, 그 속에 탄 우리 아이들…. 죽어가는 아이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상황에서도 우린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참담한 현실을 느낄수록 무능력한 국가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은 절망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놀라게 한 사건은 비단 세월호 뿐만이 아니었다. 국민이 믿고 의지해야할 사건이 군대에서도 일어났다. 윤일병과 임병장 사건은 단순히 기강해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또한 판교 환풍구 붕괴 추락사건, 청와대 비서관과 주변인들의 국정농단사건 등으로 국민은 충격에서 벗어날 틈이 없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들이 속출한 한해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리라.

이러하듯 지난 2014년은 일반 시민이 견뎌내기에는 너무도 힘든 한해였다.
언론을 한다며 들어선 이 길에서 이러한 사건들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보고만 있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밀려와 감히 펜을 들어 소견을 피력해본다. 미약하지만 아직은 이야기 할 공간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
이것은 이 땅에 아직도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비상식적인 부분들을 상식적인 것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 끈을 잡고 다시 일어서야만 하는 이유다.

그 끈은 첫째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과 기초가 없는 것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인 것이다. 그 기본은 사람이다. 인본주의(人本主義)에 기초해야 한다. 인간이 중심인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국가보다는 국민이 우선인 사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기본이 없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인재, 물질이 만능인 사회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인명 경시풍조…, 이런 사회가 마침내 안전 불감증으로 병폐를 만들었고, 많은 국민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세월호 참사! 이것이 바로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둘째는 '소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도층은 세심히 관찰하고, 국민의 바람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화와 소통이다. 국민이 이야기 할 곳도, 들어줄 이도 없는 사회에서는 국민은 참여를 포기하고 방관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줄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도충은 소외계층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의지를 보여줘야만 할 것이다. 지도충이 강요하는 일방적인 소통은 국민이 국가를 외면하게 만들고,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생각을 갖게 만드는 계기만 될 뿐이다.
이런 개인주의적인 현상을 불식하기 위해선 국민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점점 단절되어가는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다양한 의견을 조화시키려는 노력부터 해야한다.
각계각층의 소통 부재는 개인 간의 불신을 만들고, 결국 국가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내 의견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이나 의사부터 존중해야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새로운 변화‘의 모색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변화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남북통일을 위한 우리들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린 통일을 논할 때 북한의 붕괴를 희망하고 있다. 우리는 평화통일을 바라고, 그를 위해서는 북한 스스로가 붕괴되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욕심일 뿐이다.
북한의 붕괴는 남북통일을 이루는 한 방법인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런 행운이 쉽게 올 리가 없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을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이기지 않으면 통일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가 승자로서 북한을 흡수하는 형태로 통일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를 위한 선결과제는 외교에서의 변화일 것이다. 북한을 단지 적국, 또는 거대 테러리스트 단체, 반국가집단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통일의 길은 멀기만 하다.
북한을 한 국가로, 외교적인 상대로, 대화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일방적인 배려와 양보가 능사라는 말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을 주권국가로 존중하며, 통일에 대해 기존의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 등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북한이든 우리든 누구 하나는 변화를 꾀해야만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북한이 바뀔 가능성은 없으니 결국 우리가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노력은 그저 북한을 주적으로 못 박아 놓고, 외교적인 노력도, 대화의 대상으로도 인정하지 않은 채 스스로 붕괴하기를 기다린 것 밖에는 없다. 우린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북한보다 발전을 해온 입장이기에 우리가 북한의 궁핍한 현실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관계자들은 이를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것들이 선행될 때 2015년은 2014년의 일어난 많은 일들을 거울삼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한해가 될 것으로 본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